남을 의식하고 살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 꽤 많아진다. 남뿐만 아니라 일의 결과를 의식한다면 역시 시작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남 또는 결과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다른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한 수근거림이 귓가에 맴돌아 지레 겁먹고 시작도 못한 일들이 많았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어제 임시공휴일을 맞이해서 그 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해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꼭 남을 의식해야 하는 일도 아니지만 식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결과가 잘못되면 사먹느니만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몇 년째 못했었던 일이다. 그 일은 바로 매실주 담그기. 어머니에게 직접 담그신 매실청을 얻어서 먹고, 가끔 본가에 갈 때 직접 담그신 매실주를 마시면 그 향과 맛이 너무나 좋았었다. 그 때마다 반드시 내 손으로 만들겠노라고 다짐을 했고 결국 어제 성공했다.
올해는 꼭 술을 담그겠다는 생각으로 몇달 전부터 좋아하는 몇 사람들 앞에서 약속하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는 인터넷을 통해 6월초부터 매실이 수확된다는 것을 알았고, 매실주 담그는 법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매실주를 담그는데도 사람들마다 방법이 조금씩은 달랐다. 매실과 소주의 양, 매실과 설탕의 양, 한번에 매실, 설탕, 소주를 같이 넣는 방법, 매실청을 만들고 나서 술을 담그라는 분, 2-3주 숙성 후 소주를 넣는 방법 등. 마침내 이렇듯 방법이 다양한 것을 보니 비율 맞추기가 어렵지 않게 될 수 있을거라는 자신이 생겼다.
이마트에 가서 8리터 짜리 유리병을 사고, 담금소주 1.8리터 짜리 두 병을 사고, 시장에 가서 매실 5kg을 샀다. 조금만 하려다가 5kg 박스를 보고 이왕 하는 것하여 5kg을 모두 샀고, 결국은 이마트에 다시 가서 8리터 유리병과 설탕을 더 사야 했다. 소주는 나중에 필요할 때 사고. 한 병은 매실청으로, 한 병은 매실주로 담그기로 하고, 유리병을 깨끗이 닦고, 매실도 깨끗이 닦고 다 마르기를 기다렸다. 내가 술마시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5학년 딸이 한 마디 거들었다. "아빠 이렇게 진지한 모습은 처음 본다." 앞으로 백일 후에는 매실청과 술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커다란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크다.
올해 들어서는 남들 또는 결과를 의식하는 일이 적어졌다. 다짐을 했던 일도 지키는 경우가 많다. 친한 회사 사람들과 1박 2일 야영을 하였고, 출퇴근 버스 안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책을 읽고 있으며, 딸과 함께 야구장을 열심히 다니고 있고, 또 오늘 매실주를 담갔다. 솔직히 올해 자신과 약속한 것 중에는 지리산 등반만이 남았다. 사실 봄에 하려고 했었는데, 지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늘 또 다짐해야지. 올해 가을에는 반드시 할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하지만 또 생각하면 아직도 남을 또는 결과를 의식해서 못하는 일들이 많다. 혼자 등산 가는 것은 아직도 큰 다짐을 해야만 하고, 버스 안에서 책의 제목을 다른 사람이 볼 것 같아 신경 쓰이고, 야구장에 응원 깃발을 가지고 가면 남들이 쳐다보며 웃는 것 같아서 영 불편하다. 분명한 것은 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씩 해낼 때마다 행복해짐을 느끼는 것이다. 다음 주 야구장에 갈 때는 꼭 응원 깃발을 가져가야지. 이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딸이 원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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