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책을 한 권 더 읽었습니다. 역시 63편의 짧은 수필들을 모아서 엮은 수상집 (隨想集)입니다.
스님은 자연을 참 많이 사랑하셨던 분인 것 같습니다. 자연과 함께 생활하셨던 것을 책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불교의 교리, 인간의 도리에 대한 말씀, 사회성 있는 글 등 모든 스님의 가르침들이 순리에 맞고 진실됨을 더욱 느낄 수 있고, 당연히 고개숙이게 됩니다. 책을 읽는 중에 상대적으로 자연과 한없이 멀리 있는 저를 보게 되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자연에 대한 말씀을 읽는 동안에는 몰입이 잘 되지 않고 잡념이 일어나다가도, 이어지는 생활과 가까운 말씀에는 다시 읽음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성적이기만 한 목표를 위해 이성적인 방법으로만 살아가는 저로서는 항상 감정이 날카롭고, 주변과의 마찰이 느끼며, 때로는 누군가와의 인연이 끊어지고 마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삶에 있어서 자연 또는 감성의 중요성은 여러 차례 느껴왔었지만 저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이 달라집니다. 나이들면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자연이라는 감성이라는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자연과 가깝게 지낸 적이 없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겠습니다.
이 책의 글들은 1989년부터 1993년 사이에 쓰여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1989년에 대학에 입학하여 1993년에 졸업했습니다. 대학 4년간 이 책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행동을 하며 살았다는 것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를 위하지도 않았고, 사회를 돌아보지도 않았으며, 개인을 발전시키지도 않았던 무의미한 시기였습니다. 적당한 학교 과제와 술, 담배, 친구, 애인 등과의 순간적인 재미를 좇던 부끄러운 생활을 보냈습니다. 글 중에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제목을 가진 글이 있습니다. 그 제목만으로도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읽은 후에는 반성과 함께 다짐, 걱정, 후회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습니다.
늦게라도 철든다는 것은 마음을 행복하고 충만하게 해줍니다. 최근에 집사람에게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나이들면서 철드네"입니다. 처음에는 듣기 거북하던 말이, 지금은 칭찬으로 들리고 더 듣고 싶은 말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얼마나 좋아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비해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는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면 점점 더 많이 만족하게 되는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책의 내용 중에서 꼭 다시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자연계에서 배운다" - 만약 고정된 채 새로운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죽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다 한목숨이다" - 이와 같이 모든 개체의 생명은 큰 생명의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들이다. 경우에 따라 가지는 시들어도 그 생명의 뿌리는 결코 시드는 일이 없다. 생명의 뿌리는 우주의 근원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입시에 낙방당한 부모들에게" - 교육이 참으로 해야 할 일은 그럴듯한 직업을 얻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과정을 이해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삶의 진실인지 스스로 찾아내도록 거드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저 그렇고 그런 잿빛 일상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삶은 말할 수 없이 엄청난 신비입니다. 그 사람 자신이 스스로 찾아내야 할 신비입니다.
"승가의 기초교육" - 눈길을 걸을 때 / 함부로 밟지 말라 / 내가 걷는 이 발자국 / 뒷사람의 길잡이가 되리니.
"크게 버려야 크게 얻는다" - 피어 있는 것만이 꽃이 아니라 지는 것도 또한 꽃이다.
"인생을 낭비한 죄" - 삶이란 누구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몸소 귀기울여 들으면서 순간순간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삶은 영원히 새로운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은 저마다의 삶에 책임이 있다. 외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만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끝없는 관심을 가지고 낱낱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당당하게 살려는 사람만이 자기 몫의 삶에 책임을 진다.
"장마철 이야기" - 그 한가와 고요와 맑음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보상을 치른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그래서 세상에는 공것도 없고 거저 되는 일도 없다. 그 어떤 형태의 삶이건 간에 그 삶의 차지만큼 치러야 할 몫이 있는 법이다. 크면 클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치러야 할 그 몫도 또한 크고 많을 수밖에 없다.
"남의 삶과 비교하지 말라" - 사람은 저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인 존재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마다 삶의 조건이 다르고, 삶의 양식이 다르며, 또한 그 그릇이 다르다. 그래서 저마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Very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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