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에 자연스럽게 인터넷으로 장하준 교수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검색 결과 인상 깊었던 점은 장하준 교수의 집안 내력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아버지는 국회의원, 동생은 런던대 교수, 삼성전자 소액주주 운동으로 유명한 장하성 교수와는 사촌지간 등 가족들의 면면들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수재집안이라는 언론의 기사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집안에서 자라 서울대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간 후, 4년 만에 석사와 박사를 모두 받고 27세에 최연소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책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2004년 “사다리 걷어차기”,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 2007년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이 잘 알려진 책들입니다. 이들 중 특히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되는 등 다양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출판된 후 줄곧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사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에게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여러 언론에서 다양한 비평을 내놓았으며, 일반 독자들의 수준 높은 비평 역시 다양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며 양쪽의 논리를 즐기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색다른 재미일 것입니다.
이 책의 주제는 자본주의 이론 중 하나인 자유시장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서론 부분에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첫머리에서 2008년의 금융위기의 원인은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 온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합니다.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란 지난 30여 년 동안 대부분의 나라들이 추진한 경제정책으로 간섭을 최소한으로 하여 시장이 알아서 가장 효율적이고 공정한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이론으로 소개합니다. 공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민영화, 금융 및 산업부분의 규제 철폐, 국제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등의 방식으로 추진되는 이 정책으로 인해 겉으로는 세계경제가 발전해 온 듯 하지만, 실제로는 성장 둔화와 불평등, 불안정이 심화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여 궁극적인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세계경제의 엄청난 퇴보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더 부유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자유 시장주의자들의 왜곡된 논리를 “그들이 말해 주지 않는 자본주의에 관한 중요한 진실”들로 규정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은 23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주제별로 첫머리에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와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부분을 두어 자유시장정책의 논리와 그에 대한 반론과 비판을 각각 정의합니다. 그리고 사례를 통한 부연 설명과 장하준 교수의 주장들을 펼칩니다. 주제별로 한 페이지 정도의 첫머리 부분만을 읽어도 자유시장정책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래서 문제가 있구나 하는 공부가 되는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는 경제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갖게 해줍니다. 하지만 서술형의 문장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공부를 체계적으로 시켜주지는 않습니다. 서론에서 장하준 교수는 이 책의 수준에 대해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고급 경제학 서적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론에 대해 의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고급 경제학서의 수준을 넘는다고 평가합니다. 즉 초보자를 위한 경제학 입문서는 아니며 그보다 더 좁으면서도 동시에 그보다 더 넓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는 읽기 전에 가졌던 기대감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꽤 많은 부분에서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논리적인 비약과 근거 자료들이 선택적으로 취사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많은 나라들의 경제성장률만을 근거로 논리를 내세운다는 점은 제가 비록 경제학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지만 크게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등도 그렇습니다. 자유시장정책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논리보다는 자유시장정책과 계획경제의 장점을 서로 보완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세계경제 전체의 흐름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는 없는데 후진국을 위한 경제 논리가 주류로 될 수 있는 현실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리 나라도 계획경제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지만, 이제 세계 약 15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현실에서는 자유시장정책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 국익을 위해서 당연한 논리가 아닐까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책의 뒷부분에 가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장하준 교수가 뒷부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앞부분에서 약간의 과장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Thing 19”부터 마지막의 “Thing 23”까지는 큰 공감을 가졌으며, 특히 “Thing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에서는 소외된 계층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에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결론에서는 그 동안의 경제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한 8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어쨌든 자본주의를 포함한 세상의 어떤 이론이라도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서로의 입장에 따라 그러한 장점과 단점이 서로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유시장정책이든 계획경제정책이든, 보수이든 진보이든 당연히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의 정책이 더 우수하다는 잘못된 생각은 버리고 최선책, 차선책을 찾아 나가는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논리적이고 건강한 비판을 통한 대화가 가능한 더 큰 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