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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9일 일요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 장하준 (2010)

이 책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장하준의 2010년 작으로, 지난 30년 간 전 세계 경제의 주류였던 자유시장정책에 대한 비판서입니다. 비록 제가 경제학 분야에는 문외한이지만, 워낙 유명한 분의 책일 뿐만 아니라 이미 베스트셀러로 판매량에서 돌풍을 일으킨 책이라서 선택해 보았습니다. 특히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라는 무게감에 더 큰 책에 대한 기대가 들기도 하였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자연스럽게 인터넷으로 장하준 교수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검색 결과 인상 깊었던 점은 장하준 교수의 집안 내력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아버지는 국회의원, 동생은 런던대 교수, 삼성전자 소액주주 운동으로 유명한 장하성 교수와는 사촌지간 등 가족들의 면면들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수재집안이라는 언론의 기사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집안에서 자라 서울대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간 후, 4년 만에 석사와 박사를 모두 받고 27세에 최연소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책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2004사다리 걷어차기”, 2005쾌도난마 한국경제”, 2007나쁜 사마리아인들등이 잘 알려진 책들입니다. 이들 중 특히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되는 등 다양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출판된 후 줄곧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사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에게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여러 언론에서 다양한 비평을 내놓았으며, 일반 독자들의 수준 높은 비평 역시 다양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며 양쪽의 논리를 즐기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색다른 재미일 것입니다.

이 책의 주제는 자본주의 이론 중 하나인 자유시장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서론 부분에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첫머리에서 2008년의 금융위기의 원인은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 온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합니다.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란 지난 30여 년 동안 대부분의 나라들이 추진한 경제정책으로 간섭을 최소한으로 하여 시장이 알아서 가장 효율적이고 공정한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이론으로 소개합니다. 공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민영화, 금융 및 산업부분의 규제 철폐, 국제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등의 방식으로 추진되는 이 정책으로 인해 겉으로는 세계경제가 발전해 온 듯 하지만, 실제로는 성장 둔화와 불평등, 불안정이 심화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여 궁극적인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세계경제의 엄청난 퇴보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더 부유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자유 시장주의자들의 왜곡된 논리를 그들이 말해 주지 않는 자본주의에 관한 중요한 진실들로 규정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은 23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주제별로 첫머리에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부분을 두어 자유시장정책의 논리와 그에 대한 반론과 비판을 각각 정의합니다. 그리고 사례를 통한 부연 설명과 장하준 교수의 주장들을 펼칩니다. 주제별로 한 페이지 정도의 첫머리 부분만을 읽어도 자유시장정책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래서 문제가 있구나 하는 공부가 되는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는 경제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갖게 해줍니다. 하지만 서술형의 문장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공부를 체계적으로 시켜주지는 않습니다. 서론에서 장하준 교수는 이 책의 수준에 대해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고급 경제학 서적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론에 대해 의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고급 경제학서의 수준을 넘는다고 평가합니다. 즉 초보자를 위한 경제학 입문서는 아니며 그보다 더 좁으면서도 동시에 그보다 더 넓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는 읽기 전에 가졌던 기대감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꽤 많은 부분에서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논리적인 비약과 근거 자료들이 선택적으로 취사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많은 나라들의 경제성장률만을 근거로 논리를 내세운다는 점은 제가 비록 경제학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지만 크게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등도 그렇습니다. 자유시장정책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논리보다는 자유시장정책과 계획경제의 장점을 서로 보완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세계경제 전체의 흐름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는 없는데 후진국을 위한 경제 논리가 주류로 될 수 있는 현실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리 나라도 계획경제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지만, 이제 세계 약 15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현실에서는 자유시장정책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 국익을 위해서 당연한 논리가 아닐까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책의 뒷부분에 가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장하준 교수가 뒷부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앞부분에서 약간의 과장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Thing 19”부터 마지막의 “Thing 23”까지는 큰 공감을 가졌으며, 특히 “Thing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에서는 소외된 계층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에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결론에서는 그 동안의 경제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한 8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어쨌든 자본주의를 포함한 세상의 어떤 이론이라도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서로의 입장에 따라 그러한 장점과 단점이 서로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유시장정책이든 계획경제정책이든, 보수이든 진보이든 당연히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의 정책이 더 우수하다는 잘못된 생각은 버리고 최선책, 차선책을 찾아 나가는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논리적이고 건강한 비판을 통한 대화가 가능한 더 큰 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2011년 5월 6일 금요일

Life Lessons (인생수업) - Elisabeth Kubler-Ross, David Kessler (2000)

이 책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Elisabeth Kubler-Ross)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친 정신의학자로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일으킨 분입니다. 또 한 명의 저자인 데이비드 케슬러 (David Kessler)는 그녀의 제자로 미국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됩니다. 그들은 함께 죽음 직전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죽음을 연구하고 죽음을 통해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여러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작가에 대한 소개와 책 표지에 있는 짧은 카피들 ("인생과의 작별을 눈앞에 둔 101명이 말하는 삶에서 배워야 할 것과 삶이 가르쳐 주는 것",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등)은 책을 읽기 전에 어떤 선입관을 갖게 합니다. 죽기 전에 사는 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후회를 하고, 따라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꼭 해야 한다 등과 같은 생각들입니다. 실제 책의 내용도 단순히 생각하면 그러한 선입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 속에는 다양한 죽음들과 그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존경스러운 삶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죽음을 앞둔 후회에서 오는 교훈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하나의 과정을 마감하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사람들의 위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즉 작가의 말대로 "죽음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책이 아니라, 삶과 살아가는 일에 대한 책"인 것입니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된 것은 2000년으로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해도 2006년으로 출판 년도에 비해 상당히 늦었을 뿐만 아니라 거의 5년이 지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우스웠던 것은 이 책이 제 방 책장에 2006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거의 5년 동안 눈에 띄지 않다가 2011년이 되어서야 우연히 읽은 책이 이렇게도 큰 감동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또 하나의 우연은 이 책을 읽던 중에 아버지가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이 초기라서 치료가 잘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때문에 더 큰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런 이유만은 아닙니다. 이 책에는 정말 나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책은 모두 10개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분은 크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이야기가 물흐르 듯이 비슷한 분위기로 이어집니다. 물론 각 부분이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어쩐지 읽고나면 같은 이야기를 계속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현실의 삶을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가면과 역할들에 가려져 있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것은 감추고 싶은 자아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포함해서 자신의 인간적인 자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필요없는 부분을 깍아내어 원래 대리석에 들어있던 조각상을 꺼냈을 뿐이라는 미켈란젤로의 대답과 같이, 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불필요함을 버림으로써 온전한 자신을 꺼내는 것입니다.

2.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라: 조건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 한 예로 어린 아이들이 부모에게 주는 사랑을 듭니다. 보통 부모들의 사랑이 조건없다고 생각이 들지만, 이 책에서는 부모들이 아이의 웃음이나 좋은 성적, 말 잘 듣는 것에 대해 보상을 해줌으로써 사랑에 조건을 다는 법을 가르칠 뿐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기애에 대해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주위에 언제나 있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리고 모든 장벽을 없애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3.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상호작용"으로서의 관계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관계란 배우자나 가족, 몇몇 친구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맺어지는 것입니다. 관계에는 "나 자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즉 관계를 통해 나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4. 상실과 이별의 수업: 개인적으로 이 책의 하일라이트라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부모님의 죽음과 같은 큰 일에서부터 작은 소지품을 잃어버리는 작은 일까지 많은 상실과 이별의 경험을 갖습니다. 상실을 경험하고 치유하며 삶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종합병원에는 하루에도 몇 명이 죽어 나가는 암병동이 있는가 하면, 새 생명이 시작되는 신생아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5.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인연, 우연, 감사, 용서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재산이나 학위 등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영원과 하루",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용서와 치유의 시간",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등의 부분에서 다양한 삶의 교훈들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 책을 번역한 류시화 시인은 죽음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과목을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는 "살고 Live, 사랑하고 Love, 웃으라 Laugh. 그리고 배우라 Learn.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몇 개의 단어들이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들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