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광복절에 딸과 함께 "동화나라 상상열차"를 타고 남이섬에 다녀왔었습니다. 청량리역에서 가평역까지 기차를 타고 오전에 남이섬에서 놀고, 오후에는 닭갈비골목 - 에니메이션박물관 - 막국수박물관을 거쳐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패키지 여행을 통해서였죠. 아침일찍 집을 나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청량리역까지, 또 청량리역부터는 기차를 타고 가평역까지 이동하면서 딸과 함께 처음 경험해보는 행복한 기차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남이섬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다니질 못하고 있었네요. 전날 내린 폭우로 인해 상류의 댐이 방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딸과의 기차여행이라는 행복한 기분과 소문으로 갖게된 남이섬에 대한 즐거운 기대가 허물어지려는 순간이었죠. 약 한 시간을 기다린 후 이제 배가 뜰 수 있다는 소식도, 더워지는 날씨와 배 앞에 선 긴 줄로 인해 아침의 행복한 기분을 다시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배를 타고 남이섬으로 입국 ("나미나라 공화국"이랍니다)하는 순간까지도 마음은 별로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착장에 내려서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계속 마주치게 되는 자연 그대로의 예쁜 풍경들, 인공적이지만 예쁜 조형물들, 행사에 참여한 예쁜 아이들 등 오밀조밀 예쁜 여러 장의 그림들이 펼쳐져 있는 듯, 아 이래서 남이섬이 좋다고들 하는구나, 행복을 바로 찾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남이섬은 기대 이상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짜증내던 아빠 덕에 오히려 짜증도 못내고 그저 뾰루퉁하고만 있던 딸도 환한 웃음을 되찾아 "와 이쁘다"를 연발하며 신나 하고 있었습니다. 딸이랑 미리 약속했던 자전거타기는 시간이 모자라 지키지 못했지만, 대신 다음에 엄마도 함께 다시 방문하여 꼭 자전거를 타겠다는 딸과의 중요한 약속을 갖게 되었죠.
그 약속이 희미해지던 10월 말에 집앞의 도서관에서 또 하나의 남이섬을 찾았습니다. 바로 이 책 "남이섬 CEO 강우현의 상상망치"입니다. 주말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을 찾아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리는 중 "남이섬 CEO"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고, 무슨 내용일까 책의 중간을 펼쳐서 몇 줄을 읽어보고 그대로 대출기로 향했습니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은 여행 이후 두달 반 만에 희미해진 남이섬의 기억들이 되살아났고, 과연 어떻게 남이섬이 조성했는 지에 대한 궁금증도 모두 풀리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상상 (想象)"입니다. 하늘이라는 도화지에 비행기라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판문점 옆에 어린이공원을 만들겠다는 상상이 "사나이 50에 나라 하나 세우면 후세인들에게 대장부가 불리지 않겠나"라며 "나미나라 공화국"을 세울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2001년 29만명에 불과하던 입장객들을 200만명으로 늘리는 것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상상으로 유원지를 관광지로 바꾸어 입장객을 몇 배로 불려놓고 나라까지 세울 수 있다니, 강우현 사장의 상상은 "현실로 이루어지는의 상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상상은 계속 이어져, 헌법은 무법천지법, 문자는 나미짜, 화폐는 나미통보, 국민은 나미나리안, 독립선언문, 여권, 입국관리소, 애국가, 국기, 국립호텔, 관광청, 행정청, 환경청 세 개의 청으로 이루어진 정부 등으로 연결이 됩니다. 처음부터 만 명이 아닌 100만 명짜리 그림을 시작했다니 역시 상상의 스케일, 그림판의 크기가 남이섬 전체의 크기인 것이죠.
개인적으로 이 책으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회사원으로써 "조직"에 대한 생각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대기업 조직문화를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조직에 적응해가며 살고 있을 겁니다. 같은 남이섬이지만 분명히 상반되는 과거와 현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상상력으로 과거를 현재로 바꾸었다면, 현재의 낡은 조직문화를 미래를 대비한 유연한 문화로 바꾸는 것도 상상력이겠죠. 상상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조직문화에쫒기어 다니지 말고, 제가 상상하는 조직을 모습을 분명히 만들고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가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성공 뒤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제가 모르고 있는) 어려움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속에 언뜻 언뜻 상상을 실현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강우현 사장은 단지 상상력만을 남이섬에 그려놓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상상력을 그리는 과정에 "상상력이라고는 전혀 없이 현실에 몰두하는" 사람들과의 많은 마찰이 있었겠죠. 강우현 사장의 표현 중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추진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것이 개혁이고 혁신이다"라는 말에서 그 어려움이 드러납니다. 결국 상상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고, 실현하기 위한 목숨을 건 추진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은 어려운 일은 피하고 쉬운 일만을 찾기위해 오히려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많은 잘못된 문제들과 자신있게 정면으로 부딪히지 못하고 말입니다.
남이섬은 동화나라이고 상상나라입니다. 제가 괜히 좋은 책을 일고 현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상"은 분명히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분명 의미없는 상상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내가 탔던 열차의 이름이 괜히 "동화나라 상상열차"가 아니었습니다. 천진하고 맑은 동화와 상상을 꿈꾸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멋있는 삶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던 딸과의 남이섬 자전거 약속을 되새기게 된 것이 너무 다행스럽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나미나라 공화국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야겠네요.